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은 1908년 경성감옥을 시작으로 독립운동가들이 투옥했던 장소이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사용되어 독재 정부에 맞서던 민주화 인사들이 수감되었다. 일본 제국이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장소를 대한민국 독재 정부가 민주화 운동을 억제하기 위해 같은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서대문 형무소는 아이러니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보안과 청사는 1923년 완공되었다. 서대문 형무소를 관리하던 사무실이었으나 지하는 고문이 자행되던 조사실과 취조실이다. 층 높이가 낮은 지하실 때문인지 상영되는 영상 자료와 함께 전시실의 분위기가 무겁다. 물고문으로 인한 폐결핵, 폭행으로 인한 근육 파열 등 90년 전 이 장소에서 발생한 사망 기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하실 전시관은 과거를 보존해 방문자가 당시 환경을 마주하도록 의도한다.




방사형 구조인 10, 11, 12옥사는 중심에서 모든 감방을 관찰할 수 있는 파놉티콘 양식을 이룬다. 소위 사회 체제에 불만을 품었다는 이유로 수감된 사상범들은 다른 수감자와 대화를 하거나 노역을 할 수 없었으므로 감방에서만 생활해야 했다. 하지만 누워 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며 수감 환경은 계절에 따라 영하 5도에서 영상 40도까지 변했기 때문에 정자세로 앉아 감시를 받았던 수감자들의 생활은 열악했다.











여성 미결수가 수감됐던 여옥사 전시실은 1976년 철거된 후 2011년 복원된 건물이다. 그리고 1920년 옥중 3.1만세운동이 이루어진 장소였다. 복원된 여옥사 주변이 넓게 비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간수소, 여구치감 등의 규모가 상당했다는 것과 수감된 여성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록상 1937년 여성 수감자는 186명이다.



375m 길이의 담장과 10m 높이의 마루가 방문자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당시 수감자들이 느끼던 불안, 공포를 여과 없이 전한다. 그리고 과거 자료의 모습과 현재 역사관이 비로소 겹쳐질 때 방문자가 서 있는 장소는 수많은 역사가 이룬 결과라는 것을 알았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은 일본 제국에 대항한 독립운동가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관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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